" 서울의 성곽 순례길.. 내사산(內四山) 줄기를 따라 "
탐방코스 : 돈의문~인왕산~창의문 ~북악산~숙정문~혜화문~낙산~흥인지문~광희문~남산~남대문~정동길~돈의문탐방일시 : 2009년 10월 16~17 이틀간 놀면서 쉬면서 마시면서~~~
탐방시간 : 첫째날 6:11분( 09:39 ~15:50)
둘째날 4:42분 (09:40~14:22)계 10시간 53분(시간은 의미가 없읍니다.)
탐방거리 : 첫째날 15.05km 둘째날 10.05km 계 25.10km
▼ 이번구간의 탐방경로표(경로화일은 제 블러그에 있읍니다.)
▼ 구글로 표현한 탐방 경로표
▼ 탐방 고도표 (좌로부터 인왕산,북악산,낙산,남산)
▼ 서울성곽 순례길 개념도
▼ 서울성곽 수선전도
조선 시대에 한성(漢城)이라 불리었던 서울의 성곽(城郭).. 수도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며, 조선의 역사이자 서울의 상징이기도하며 조선 건국 초에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태조 4년(1395) 한양을 방위하기 위해 쌓은 성곽에는 4대문과 4소문을 두었다.
4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이고, 4소문은 홍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을 말한다.
동대문에만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甕城)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성곽은 높이가 12m, 둘레가 약 18km에 이르며 서울을 구성하는 내사산(內四山: 북악산,낙산,남산,인왕산)의 능선을 잇고 있는데 그 모양은 타원형에 가깝다.
세종 4년(1422)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으며, 숙종 30년(1704)에는 개축을 하며 쌓는 등 서울 성곽은 여러 번에 걸친 수리과정을 거치며 쌓은 시기를 구분할 수 있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외사산(外四山) : 조선 태조는 서울을 도읍으로 정할 때 내사산과 더불어 외사산을 두었는데 외사산(外四山)은 북쪽의 북한산, 남쪽의 관악산, 동쪽의 용마산, 서쪽의 덕양산(행주산성)으로 멀리서 서울 도성을 감싸 앉고 있는 외곽의 산들인데, 이중 북한산성은 서울 외곽 방어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도시계획이라는 구실로 성문과 성벽을 무너뜨렸고,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더욱 많이 파괴되었으며, 현재 삼청동· 장충동 일대의 성벽 일부와 남대문 동대문 숙정문 홍예문이 남아있다.
서울 성곽(城郭)은 역사 유적지로서의 가치도 귀중하지만 도시경관적 측면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장소로 탈바꿈 시키면서 역사와 삶이 어우러지는 공간을 제공하고 혜화문이 복원되고 숙청문ㆍ광희문의 문루가 복원되는 등 변모되는
과정으로 서울 성곽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자료에 대한 설명은 에이원님의 글을 인용하였읍니다.)
지난번 에이원님의 서울성곽 순례를 본후 차일 피일 미루다 실행을 하려고 합니다.
서울 중심의 내사산을 따라 가볍게 하는 산행이며 탐방길이라 친구와 함께 진행을 합니다.
자료는 선답자이신 에이원님 산행기를 참조하고
녹색연합(http://www.greenkorea.org/)의 자료창고중 백두대간에 있는 서울성곽순례길 안내서를 사용하였읍니다.
저번에 시간있을때 남산쪽을 돌아서 인왕산 오르려하다가 월요일이라 못올랐읍니다.
월요일엔 인왕산과 북악산 등산을 못하더군요
그래서 친구와 같이 순례를 하면서 한바퀴 반을 돌게 되었읍니다.
야간근무하는날 친구와 서대문역에서 만나고 강북 삼병원에 도착하면서 오늘의 탐방길을 진행하게 됩니다.
돈의문(敦義門, 서대문) 터
서울 성곽의 4대문 가운데 서쪽의 큰 문으로 서대문(西大門)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흔적이 없읍니다.
새문· 신문(新門)이라고도 하며 1396년(태조 5) 한양 도성(都城) 축조 시 처음 세워졌으나
1915년 일제의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 공사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읍니다.
▼ 강북 삼성병원앞 돈의문터에서 탐방을 시작합니다.
▼ 경교장길을 지나서 우측으로 서울특별시 교육청을 보면서 진행을 하면 아래 사진에 보이는 성곽흔적을 따라서 진행을 합니다.
▼ 월암 근린공원에 도착합니다. 사진처럼 가면 홍난파 가옥을 만나고 성벽을 따라가면 홍난파 가옥을 만나지 못합니다.
▼ 홍난파가옥입니다. 가옥에서 오른쪽으로 공원으로 진행하면 봉선화등이 새겨진 노래비가 있읍니다.
노래비를 보고 내려오는길의 갈림길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랜드마크인 삼거리슈퍼를 만나고 삼거리 슈퍼에서 우측으로 올라옵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홍파빌라앞을 지나서 삼거리슈퍼를 내려다보는곳에서 만나게 됩니다.
▼ 돌아보는 성곽길 랜드마크 삼거리 슈퍼
상록수 어린이집을 지나고
지식경제부 사직사앞을 지나고
옥경이 식품있는곳에 이어지는 성벽이 보이고 좌우 어느쪽으로 진행을 해도 됩니다.
▼ 인왕산 입구
▼ 앞으로도 가끔씩 만나는 안내문입니다.
▼ 성곽 바깥으로 가면 이렇게 성곽이 보이고
▼ 암문으로 들어와서 성곽내부쪽으로 진행을 하면 전망좋은 장소를 만나게 됩니다.
▼ 전망좋은 장소에서 바라보는 남산과 N타워
▼ 성벽길 복원공사중 안내문입니다. 성벽을 따르지 못하고 우회하게 됩니다.
▼ 인왕산 안내문
인왕산 약수터를 지나고
▼ 인왕산 생태 경관 보전지역 안내문
▼ 저번에 왔다가 결국 못올랐던 안내문입니다.
▼ 해골바위
▼ 범바위- 통제로 진입 불가
▼ 아직 복원되지 않은 무너진 성곽이 보이고 바위를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길을 따라서 인왕산정상을 향해 오릅니다.
▼ 범바위쪽의 복원하는 성곽이 보입니다.
▼ 안산전경 과 친구
▼ 폼도 한번 잡아보고
서울의 우백호(右白虎) - 인왕산(仁王山, 삿갓바위, 338m)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鎭山) 중 하나이며 동쪽 산허리로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서울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자하문· 명륜동· 동대문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사직동· 홍제동까지 이어진다.
조선 초에 도성(都城)을 세울 때, 북악산을 주산(主山), 남산(南山)을 안산(案山), 낙산(駱山)을 좌청룡(左靑龍), 인왕산(仁王山)을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다.
산의 서쪽 기슭(선불각)에 있는, 스님이 장삼을 입은 듯한 선(禪)바위(祈子岩, 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하며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무신당인 국사당을 선바위 옆으로 옮긴 뒤부터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으며, 주위에 많은 무신당이 생겨 지금도 굿이 성행하고 있다. 1995년 ‘仁王’으로 옛 지명이 환원되었으며 군사적인 이유로 통제되었다가 1993년부터 개방되었다
▼ 인왕산 정상에서 친구
▼ 인왕산 정상의 증명사진
▼ 인왕산 정상의 친구
▼ 예전에 다녔던 길은 폐쇄되어 있고 정상에서 돌아나와 진행을 합니다.
▼ 우측의 바위가 파진곳으로 다녔던거 같은데 그곳은 폐쇄되었고 좌측의 철계단으로 내려옵니다.
적당한곳에서 자리펴고 앉아서 오래 오래 쉬면서 준비했던 샌드위치와 김밥그리고 과일을 먹으면서 반주도 한잔 곁들입니다.
▼ 기차바위
홍지문(弘智門)과 탕춘대성(蕩春臺城)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3호) 탕춘대성(蕩春臺城)은 서울 도성(都城)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았으며,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천(현재 홍제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으로 약 4km에 이른다.
‘탕춘대성’ 이라 불린 것은 이 산성이 지나는 세검정에 연산군때 지은 탕춘대(蕩春臺)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성의 서쪽에 쌓은 성이라 서성(西城)이라고도 불리며, 이 성의 출입문인 홍지문(弘智門, 漢北門)과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 좌우에 있는 인왕산과 북한산에 날개처럼 쌓은 성이라 하여 익성(翼城)이라고도 한다.
* 홍지문(弘智門)과 탕춘대성(蕩春臺城)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3호) 탕춘대성(蕩春臺城)은 서울 도성(都城)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았으며, 인왕산 동북쪽에서 시작하여 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서 사천(현재 홍제천)을 지나 북한산 서남쪽 비봉 아래까지
연결하여 축성한 산성으로 약 4km에 이른다.
‘탕춘대성’ 이라 불린 것은 이 산성이 지나는 세검정에 연산군때 지은 탕춘대(蕩春臺)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성의 서쪽에 쌓은 성이라 서성(西城)이라고도 불리며, 이 성의 출입문인 홍지문(弘智門, 漢北門)과 오간대수문(五間大水門) 좌우에 있는 인왕산과 북한산에 날개처럼 쌓은 성이라 하여 익성(翼城)이라고도 한다.
▼ 진행할 북악산과 서울성곽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 성곽길을 따라서
▼ 우측으로 청와대도 보이고
성곽길중간에 시설물이 있어서 성곽 밖으로 진행하다 다시 성내로 들어옵니다.
▼ 정자가 있는 청운공원에 도착하고 우측길로 도로에 내려섭니다.
▼ 청운공원 좌측 언덕에는 쉼터가 있고 윤동주시인의 언덕이라고 되어 있읍니다.
▼ 북악산 입구에는 최규식경무관동상과 정종수경사의 순직비가 보이고 안내문도 있읍니다.
▼ 청계천 발원지
▼ 북악산 서울성곽 관람안내입니다. 저번에 왔다가 북악산길로 지나갔었읍니다.
창의문(彰義門, 북소문)
사소문(四小門) 중 북소문(北小門)에 해당되며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으로도 불린다.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 는 뜻으로 현재의 문루는 1741년 (영조 17)에 세운 것으로 사소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다.
창의문은 태종 13년 이곳의 통행이 왕조에 악영향을 준다는 풍수학자 최양선의 주장으로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했다. 조선시대 인조반정 때 능양군(인조)을 비롯해 그를 따르는 의군(義軍)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창의문에서 숙정문 구간은 1968년 1.21사태로 인하여 오랜 기간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그간 군사보호시설에 묶여 2007년 4월에야 일반에게 개방된 구간이다.
▼ 창의문
▼ 창의문 우측으로 탐방관리소가 보입니다. 신분증보이고 서류작성하고 탐방증 받아서 목에걸고~
▼ 성곽길
▼ 쉼터에서 찍는 방문증 증명사진
▼ 친구
서울의 주산(主山) - 북악산(北岳山, 342m)
‘백악마루’라 불리는 곳으로 백악산(白岳山)이라고도 한다. 서울의 내사산(內四山)을 형성하며 이들 산줄기를 연결한 서울의 성곽은 이 산을 기점으로 축조되었다. 경복궁 뒤쪽에 위치하고 모습이 탐스럽고 날씬하여 죽순처럼 벌어지기 직전의 모란꽃 봉우리에 비유되기도 하였다.
산 능선에는 옛 성곽이 원형대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고, 서울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어 현대의 서울과 조선의 서울이 공존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창의문에서부터 정릉(貞陵) 입구에 이르는 북악스카이웨이가 북악산 주봉 북쪽 사면을 끼고 돌면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달리고, 남동쪽 산기슭에는 삼청(三淸)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 안내문
▼ 북악산 정상에서의 증명사진
▼ 성벽을 돌아서 청운대를 확인하고
▼ 멀리 북한산의 비봉능선에 눈에 들어옵니다.
▼ 암문으로 들어서 성내로 들어오고
▼ 성벽축조의 안내문
▼ 곡장에서 만나는 성벽 안내문
▼ 좌측으로 멀리 보이는 북악스카이웨이의 팔각정
▼ 좌측아래로 보이는 성북동지역~ 뒤쪽우측에 수락산이 보입니다.
숙정문(肅靖門, 북대문)
서울 성곽을 이루는 사대문(四大門) 가운데 하나로 원래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으로, 도성 북쪽에 있는 대문이라 하여 북대문· 북문 등으로도 부른다.
‘엄숙하게 다스린다’ 는 뜻으로 지어졌으며 풍수지리학적으로 지맥을 손상시킨다고 하여 문을 폐쇄하고 통행을 금지하였으며 음양오행 가운데 물을 상징하는 음(陰)에 해당하는 까닭에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기우(祈雨)를 위해 열고, 비가 많이 내리면 닫았다고 한다.
대신 숙정문 서북쪽으로 세검정이 있는 홍제천 위쪽에 홍지문(弘智門)을 내고 그쪽을 통해 다닐 수 있었다.
1968년 1·21사태 이후 통행을 금지하다가, 2007년 4월에서야 일반에 개방되었다.
▼ 숙정문
▼ 성벽넘어 보이는 삼청각
▼ 행선표
▼ 말바위 조망명소 ~설명중 2번은 북한산이 아니고 도봉산입니다.
▼ 삼청각이 보이는 성북동지역
▼ 성북동지역과 돈암동지역
▼ 나무계단을 넘어서 성밖으로 성벽을 따라야 하는데 그냥진행하다 만나는 전망좋은 장소~ 알바중
▼ 알바중 만나는 남산과 혜화동 명륜동지역
▼ 지나온 인왕산,북악산이 보입니다.
▼ 알바중에 멋진 바위도 보고
성벽과 점점 멀어지고 삼청공원쪽으로 진행을 하고 있어 다시 원위치를 합니다.
에이원님이 요기서 나무계단을 넘어가라고 했는데 깜박하고 경관에 취해서 알바를 했는데 알바를 하지 않았다면 보지못했을 멋진
조망도 보았읍니다.
▼ 와룡공원쪽으로 진행을 합니다.
▼ 이렇게 나무계단을 넘어서 내려서서 진행을 합니다.
▼ 성벽 바깥길을 따라서
▼ 와룡공원에 도착하게 됩니다.
▼ 와룡공원으로 진행이 됩니다.
▼ 성곽은 성북동을 끼고 돌아갑니다.
암문도 지나고
▼ 서울성곽 안내문
▼ 성벽길이 아주 멋집니다.
▼ 도로건너 돈까스 전문점들이 보이고 사진의 우측 서울 왕돈까스옆 골목길로 들어 서야 합니다.
한참을 도로따라 내려갔다가 돌아 옵니다.
▼ 왕돈까스건물과 경신중고등학교 뒷담장을 따라서 진행을 합니다. 경신중고 뒷담장에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읍니다.
▼ 강력한 경고문도 눈에 띕니다.
▼ 렌드마크 혜성교회앞을 지나갑니다. 간판밑에 성곽의 흔적이 있읍니다.
동네 주민을 만나고 이지역도 성곽 정비구역에 들어 있다는 말을 듣읍니다.
곧 복원이 이루어 질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 남아있는 서울성곽
▼ 혜화문의 성곽을 만나고
혜화문(惠化門, 동소문)
혜화문은 도성의 4소문 중 동소문(東小門)에 해당되며 동문(대동문)과 북문(숙정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홍화문(弘化門)이라 하였다가, 1483년(성종 4)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하여 1511년(중종 6) 혜화로 고쳤다.
일제 때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 길을 내면서 헐어버렸지만 1975년부터 시작하여 1980년에 완공된 서울 성곽의 일부로 1992년에 복원하였다.
▼ 혜화문
▼ 홍화문터 안내문
혜화문앞에서 한성대역르로 도로를 건너게 됩니다.
▼ 한성대입구역 3번출구로 나와서 삼선동방향으로 가야합니다.
그런데 4번출구로 나오는 바람에 한참을 알바를 합니다.
▼ 이렇게 혜화문사진을 찍었다면 알바하는중입니다.
성벽잘린곳을 넘어서 한참을 길을 찾아보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 옵니다.
▼ 한성대 입구역 3번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면 행복슈퍼를 만나고 우측길로 진행을 합니다.
▼ 적당한 곳에서 우측 성벽으로 다가섭니다.~ 전부 공사중입니다.
▼ 성벽공사가 한창입니다.
▼ 낙산 올라가는 성벽길이 한창 공사중 입니다.
▼ 성벽바깥에서 바라보는 조망 ~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이 보입니다.
▼ 성벽중간의 암문으로 성내로 들어갑니다.
▼ 낙산 공원에 도착합니다.
서울의 좌청룡(左靑龍) - 낙산(駱山, 125m)
낙산(駱山)은 수도 서울을 구성하는 내사산(內四山)의 하나로 주산(主山)인 북악산 의 좌청룡(左靑龍)에 해당하며 그 산세가 낙타를 닮았다고 해서 낙타산(駱駝山)이라고 불렸는데 이를 줄여서 낙산(駱山)이라고 부르던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아파트 단지로 훼손된 낙산의 자연환경을 복원하고 역사적 문화 환경을 제공키 위해 공원녹지 확충계획을 통하여 2000년부터 낙산공원이 조성되었다.
낙산의 노을 인평대군이 석양루(夕陽樓)를 지었다는 사실처럼 낙산공원은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대학로에서 오르는 길은 예술의 길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마로니에 공원의 낙산 기슭에는 8·15광복 직 후 미국에서 귀국한 이승만 박사가 살았고 지금은 ‘이승만 기념관’으로 보존되고 있는 이화장(梨花莊)도 있다.
▼ 낙산 안내문
▼ 공사안내문
▼ 낙산에서 성밖으로 진행하는 입구입니다.
▼ 성내를 따라 걸으면서 바라보는 성곽
성터교회가는 암문도 지나고
율곡로 도로를 만나고 좌측으로 철거하는 병원앞으로 진행하면
▼ 흥인지문 뒷편으로 도착을 합니다.
▼ 야간근무를 가야해서 오늘의 탐방을 여기서 종료합니다.
6시간11분 15.05Km를 걸었는데 쉬엄쉬엄 놀아가면서 왔더니 시간이 제법 걸렸읍니다.
▼ 닭한마리 칼국수로 오고
▼ 닭한마리로 가볍게 반주를 하고 내일을 기약합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
보물 제 1호 흥인지문(興仁之門)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완성하였다가 단종 원년(1453)에 개축하였으며 현존하는 동대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다.
'흥인(興仁)'은 ‘어진 마음을 북돋운다’ 는 뜻으로 유교사상의 첫 번째 덕목인 인(仁)을 뜻하며 다른 4대문과 달리 네 글자의 현판이 독특한데 도성(都城)의 동쪽 방면이 텅 비어있어 ‘의’에 해당하는 지(之)자를 넣어 무게감을 주었다고 한다.
흥인지문의 도성은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다.
숭례문 화재 이후에 그 소중함이 한층 더해진 우리네 문화재이다.
옹성(甕城) :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다음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다시 동대문에서 친구와 만납니다.
오늘도 쉬며 놀며 가기로 합니다.
▼ 오늘의 탐방 시작점인 흥인지문(동대문)
▼ 어제 내려온길~ 좌측으로 내려왔읍니다. 성밖으로 진행을 하면 우측 성벽을 따라서 내려옵니다.
▼ 오간수교에서 바라보는 청계천
▼ 오간수교
▼ 오간수교 지나자 마자 줄지어선 포장마차~ 구석에 앉아서 아침부터 한참을 시간을 보내고 갑니다.
▼ 역사속으로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의 공원 건설현장
▼ 랜드마크 서울매트로 동대문 별관앞에서 우측으로 퇴계로를 건너서 광희문으로 접근하게 됩니다.
광희문(光熙門, 남소문)
남소문(南小門)에 해당되며 시구문(屍軀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으며 서소문(西小門)과 함께 시신(屍身)을 내보내던 문이다.
1396년(태조 5) 도성을 축조할 때 창건되었으며, 1422년(세종 4) 개축된 것으로 추측된다.
1719년 문루를 세워서 광희문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그 후 1975년 도성복원공사의 일환으로 석문을 수리하고 문루를 재건하였다
▼ 광희문에 도착하고 금호동길로 진행을 합니다.
▼ 광희문에서 이어지는 서울성곽
광희문교회앞을 지나가고
맞은편 강남공인중계사 사거리에서 장충단길 즉 신당약국을 우측에 두고 꺽어진다.
▼ 신당약국
우진부동산 중개소 와 백구컴퓨터 크리닝쪽 좌측길로 간다.
신승빌라앞을 지나가고 천주교 신당동교회앞을 지나면서 다시 성곽의 모습이 들어난다.
▼ 동호대로에 내려서며 바라보는 성곽
▼ 우측으로 장충체육관이 보이고
▼ 서울성곽을 따라서 ~ 군데 군데 복원한 흔적이 보입니다.
암문을 지나고 성곽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성곽이 끊어진 곳에서
▼ 서울시가 선정한 우수조망장소인 정자를 만납니다.
▼ 조망
▼ 가야할 서울N타워도 보이고
▼ 조망장소에서 돌아나와 성벽을 따라서 내려갑니다.
▼ 한국 자유 총연맹 광장을 가로질러 지나고
▼ 남산공원에 들어섭니다.
▼ 국립극장인 해오름극장
▼ 남산공원 안내도
▼ 남산 약수터
▼ 가운데 산책로로 진행을 하다가 만나는 나무계단
남산순환도로를 만나고 성벽을 따라서 걷게 됩니다.
▼ 서울 N타워
▼ 돌탑도 보이고
서울의 남주작(南朱雀) - 남산(南山, 262m)
본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인데, 옛말의 '마뫼'로 곧 남산이란 뜻이며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 중의 하나이다. 시민공원으로 개발된 것은 1910년으로 산꼭대기에는 조선시대 이래 국사당(國祠堂)· 봉수대(烽燧臺)가 있었고, 8·15광복 전까지 광장 주변에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경성신사(京城神社)·조선신궁(朝鮮神宮) 등이 있었다. 조선 태조(太祖) 때 쌓은 성곽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고 있는 느낌이다.
▼ 남산의 정상 팔각정
▼ N타워 뒷편으로 이어지는 자물쇠행열~~ 모두들 인연이 이루어 졌겠지요
▼ 타워 뒷편에서 바라보는 용산쪽과 여의도
▼ 봉수대 근무교대식이 시행되고 있읍니다.
▼ 혼자왔을때는 없더니 오늘은 봉수대 근무인원도 보이고 관광안내도 하고 있읍니다.
▼ 문화공연 안내문
▼ 봉수대 안내문
▼ 남산 포토 아일랜드 북측지점에서 조망을 봅니다.
▼ 멋진 조망이 보입니다.
내려오는길 적당한곳에서 앉아서 반주한잔하면서 시간을 오래오래 보냅니다.
▼ 교육정보 교육원쪽으로 내려오고
▼ 안중근의사 동상과 기념관
▼ 각종 비석이 즐비하게 모여있고
▼ 백범 김구 선생 상도지나고
▼ 돌아보는 남산 N타워
▼ 김유신 장군상을 지나면
▼ 힐튼호텔앞에서 SK건물쪽으로 우측으로 진행을 합니다.
▼ 이어지는 성곽의 흔적을 따르고
▼ 남산육교를 건너서
국보 제 1호 숭례문(崇禮門, 남대문)
숭례문(崇禮門)은 국보 제 1호로 조선시대 서울을 둘러쌌던 4대문의 하나로 흔히 남대문(南大門)이라고도 부르며 1396년(태조 5년)에 창건되었다. 숭례문의 현판은《지봉유설》에 따르면 양녕대군이 썼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에 관한 이설이 많다.
풍수지리에 입각한 서울 4대문 및 보신각(普信閣)의 이름은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지어졌는데, 즉 그 성의 각 대문으로 仁(동,흥인지문), 義(서,돈의문), 禮(남,숭례문), 智(북,숙정문), 信(중앙,보신각)을 두어 5덕(五德)을 표현했는데 숭례문의 "례"는 여기서 유래한 것이다.
숭례문의 글자가 세로로 쓰인 것은 남쪽은 양기가 충만한 곳인데 남쪽 관악산이 그 형상이 불(火)의 모양을 하고 있고 화기(火氣)가 세어 도성에 화재의 위험이 있으므로 이에 맞대응하는 뜻에서 숭례문이란 글자를 세로 로 적었다고 한다.
▼ 공사중인 남대문▼ 남지터 안내문
남대문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건너고 상공회의소앞으로 다시 성곽길을 이어갑니다.
▼ 상공회의소 빌딩앞에 있는 성곽 안내문
▼ 기념 촬영
흔적만 남은 성곽을 따라서 걷다가 중앙일보 사옥 앞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서소문(西小門, 소의문)
소의문(昭義門)이라고도 하며 1396년(태조 5) 9월 성문을 건립 당시 소덕문(昭德門)이라 하였다가, 1744년(영조 20) 문루(門樓)를 세우면서 이 이름으로 고쳤다.
서소문동 큰길에 있던 서남간문(西南間門)이며, 일반적인 통행로이면서 광희문(光熙門)과 함께 시체를 성 밖으로 옮긴 통로 구실을 하였다. 서소문 공원이 죄인 처형 장소였던 곳으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반대했던 사육신도 이곳에서 명을 달리 했다고 전해진다.
▼ 서소문터
외환은행 서소문 지점앞 횡단보도를 건너서 반대편 우리은행 못미쳐서 우측 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옛 정취가 배여있는 정동길로 이어집니다.
▼ 배재학당 옛건물과 보호수 향나무
서울 시립미술관앞을 지나서 덕수궁 돌담을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정동길을 걸어갑니다.
▼ 정동극장
▼ 이화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 고등학교 안내문
▼ 어서각터 안내문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 관립법어 학교터 안내문
▼ 다시 돈의문터에 도착하면서 오늘의 탐방을 종료합니다.
▼ 돈의문터가 있는 정동사거리
▼ 어제 오늘 이틀간에 걸쳐서 알바거리를 포함하여 이만큼 걸었읍니다.
첫째날 06:11분( 09:39 ~15:50)
둘째날 4:42분 ( 09:40~14:22 )계 10시간 53분(시간은 의미가 없읍니다.)
탐방거리 : 첫째날 15.05km 둘째날 10.05km 계 25.10km
▼ 정동축제가 벌어지고 있는곳을 들려 봅니다.
▼ 대한문
▼ 북창동 풍류거리 적당한곳에서 둘이서 뒷풀이를 합니다.
벼르던 서울성곽길 순례를 이틀에 걸쳐서 하였읍니다.
남산쪽사진은 그전에 혼자 남산쪽올랐을때 찍었던사진이 합쳐져 있읍니다.
산행과 다르게 여유있게 놀며 쉬며 마시며 친구와 둘이서 탐방을 했읍니다.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또 산행을 하면서 여유있게 다닌게 언제적인지 기억에 없읍니다.
에이원님 말씀대로 역사의 자취를 돌아보면서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둘이서 뒷풀이를 거하게 하고서 돌아서면서 아쉬움이 남는것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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